태풍 경험담
날씨가 점점 더워지니 곧 여름이다. 여름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는 태풍이다.
여름철 우리나라 태풍은 무섭다. 아니 공포스러울 때가 많다. 농사일이나 양식을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도시인으로 살아갈때는 태풍이 온다는 뉴스를 봐도 ‘남의 일’로만 생각했었다. 나와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2002년 태풍 루사가 우리나라 전역에 커다란 상처를 내고 지나갈 때 태풍의 위력을 실감한 적이 한 번 있었다.
그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태풍이 오던 날은 태풍으로 인해 입주민들에게 피해가 발생할까봐 밤 늦게까지 직원들과 순찰을 돌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한 세대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앞 베란다 창문이 바람 때문에 떨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해당 동의 경비원과 함께 올라갔더니 주인 아주머니는 "태풍이 오는데 깜박 잊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창문 틈으로 바람이 몰아쳐서 커다란 베란다 창문 윗쪽이 창틀에서 빠져 거실쪽으로 기울었다."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고, 주인아저씨 혼자서 기울어진 창문을 붙잡고 애를 쓰고 있었다. 집주인과 경비원, 나, 이렇게 셋이 두 손으로 밀어도 도저히 밀어지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강력했다. 계속 손으로 밀면서 버틸 수는 없어서 경비원에게 각목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니 다른 경비원에게 연락하여 기계실에 있던 각목 세 개를 갖고 왔다. 그 각목으로 베란다 안쪽 벽과 베란다 창문 사이에 끼워넣고 밀어올려 버팅겨 놓았다. 임시 방편으로 창문이 안쪽으로 쓰러지지 않게 고정시켜 놓은 것이다. 다음 날 피해상황을 집계해보니 580세대 중 십여가구에서 창문이 깨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때 전국적으로도 많은 아파트의 피해사례가 집계되기도 했었다.
그 후 태풍의 위력을 실감한 것은 2019년 강화도 외포리에서 양식할 때였다. 9월 7일 태풍 링링이 강화도를 정면으로 통과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밧줄을 사다가 하우스지붕을 몇겹으로 튼튼하게 동여 맸다.
오후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태풍이 밤 늦게까지 계속됐는데 2층으로된 컨테이너 숙소가 날아갈까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래도 하우스는 여러번 동여맸으니 잘 버텨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하우스 지붕 한쪽에서 비닐이 날리기 시작하는게 보였다. 밖으로 나가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밀자 바람 때문에 문이 밀리지 않는다. 온 몸으로 문을 밀어 틈을 벌린 뒤 몸을 비틀어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문은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닫혀버렸다.
2층 계단 난간을 잡고 서 있는데 날아갈 것 같아 조심조심 내려왔다. 빗물이 얼굴을 때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고 20여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하우스까지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람을 정면으로 받고 가려니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그래도 휘청휘청하며 하우스에 다가가 문을 열었더니 이미 하우스 지붕의 중간이 절반쯤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하우스 안쪽을 살펴보니 오른쪽 끝부분의 창문이 태풍의 압력에 못이겨 깨졌고 그곳으로 바람이 몰아쳐서 비닐하우스의 가운데 지붕을 날려버린 것이다. 다행히 양 끝쪽 배전함이 있는 곳은 지붕이 붙어 있어 전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하우스 안에 있는 수조에 새우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전기가 누전 등으로 차단에 되면 브로워가 멈추고 수조 안의 새우들이 산소부족으로 폐사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잦아들고 뻥 뚫린 하우스 천정 위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이제 태풍이 다 지나갔나?’
이런 생각이 들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게 태풍의 눈이구나’
당시를 회상해보니 양식장이 있던 지역으로 태풍이 정면으로 통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날은 밤새 전기가 나갈까봐 밤을 꼴딱 새웠다.
아침에 드러난 비닐하우스의 모습은 폭격 맞은 집 같았다. 인근의 10여개가 넘는 양식장들에서도 하우스가 날아가거나 심지어는 무너진곳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양식장 입구 대로변에 두어달전 새우전문 식당이 생겼는데 며칠 전 2층 옥상에 비닐하우스를 새로 지었다. 식당을 야외로 넓히려고 만든 것이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고 1주일도 안되어 이번 태풍으로 비닐하우스가 날아가 버렸다.
우리 서검도 양식장의 낡은 컨테이너 창고도 그 때 굴러 떨어져 거꾸로 나딩굴었다. 이 처럼 태풍은 그 위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갈수록 기상이변이 심해지고 태풍이 북상하는 빈도도 잦아질것 같다.
수도권 지역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강화도의 경우 태풍이 지나가는 경우는 남부지방에 비해 많지 않다. 그래도 몇년에 한 번씩은 태풍이 지나가니 안심할 수가 없다.
다음날 아침 하우스의 풍경이 꼭 지금 보수하기 전의 우리 서검도양식장 중간육성장의 하우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하우스 비닐을 씌우는 일은 꼼꼼하게 신경써야 한다. 이제 내일이면 비닐하우스를 씌우는 업자가 올 것이다. 하루에 모든 일을 끝낸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